Book & Superficial2007. 1. 27. 22:21
서양에서 말하는 판타지는 마치 전래동화 같다. 선과 악의 구분은 확실하고 빛과 어둠 또한 엄연히 구분되어 있다. 착한 사람은 이기고 나쁜 사람은 진다. 어둡게 말라붙어 있던 강산은 착한 사람이 이겼을 때 빛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생명이 뿌리내리고 생수가 흘러넘친다. 그러나 길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만든 판타지는 역시 그의 색깔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묘한 B급의 냄새. 그래도 할 말이 없다. 재밌으니까.

<블레이드2>에서는 하위문화의 용광로를, <헬보이>에서는 지옥의 악마를 보여주었던 길레르모 델 토로. 그의 영화에는 언제나 그렇듯 어둠과 죽음이 있다. 전래동화 같은 판타지가 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다면 아름다운 이야기도 어둠과 죽음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 영화 <나니아 연대기>
ⓒ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먼저 판타지 이야기를 해 보자. 세계 3대 판타지 소설로 불리는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어스시의 마법사>는 모두 영화화되었다. 물론 '어스시의 마법사'는 <게드 전기>란 이름으로 애니메이션화되었지만. 이 세 작품 중 <판의 미로>와 함께 생각해 볼만한 작품은 바로 <나니아 연대기>다.

작가인 C.S. 루이스가 기독교인이었고 그가 조카들에게 예수의 일생을 쉽게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쓴 동화책 <나니아 연대기>. 덕분에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가득 담겨있다. 하얀 마녀에 의해 죽게 된 한 아이를 대신해 스스로를 죽음의 길로 내모는 아슬란은 후에 부활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아슬란이 네 명의 남매들에게 통치권을 위임하는데 이 또한 기독교의 인간론을 나타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영국. 공습을 피해 디고리 교수의 시골 별장으로 간 페번시 가의 네 남매가 나니아에서 겪는 이야기를 통해 <나니아 연대기>는 기독교에서 전하고자 하는 진리를 기독교에서 금기시한 다양한 신화의 이야기 속에 녹여내었다.

▲ 영화 <판의 미로>
ⓒ 프라임 엔터테인먼트
이러한 <나니아 연대기>의 반대편에 길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가 있다. 여주인공인 오필리아는 우연한 기회에 만난 요정을 따라 나섰다가 판의 미로에 들어선다. 그곳에서 자신이 지하세계의 공주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판이 제시하는 임무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간다. 영화 <판의 미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판타지 영화와는 달리 꽤 잔인한 편이다. 표현하고 있는 이미지 또한 신비하고 아름답기보다는 섬뜩하고 그로테스크하다.

예를 들어 <나니아 연대기>에서 옷장을 통해 나아간 곳은 흰 눈으로 덮인 아름다운 장소인데 비해 오필리아가 임무 수행을 위해 찾아가는 장소는 대부분 어둡고 음울하며 무서운 장소다. 단순히 잔인하고 어두운 이미지들이 반기독교적인 요소라는 것은 아니지만 <나니아 연대기>가 보여주었던 밝고 희망적인 메시지와는 반대편에 서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하세계의 공주, 나무 속의 두꺼비, 식탁을 지키는 요괴 등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천국과는 상반된, 말 그대로 지하세계 지옥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들로 가득 찬 영화가 <판의 미로>다.

▲ <햄릿>의 오필리아
ⓒ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또한 <나니아 연대기>가 현실과 환상을 명확히 구분하는 반면 <판의 미로>는 오필리아를 통해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모호하게 표현한다. 오필리아 이야기를 해보자. 햄릿을 사랑했던 오필리아. 그녀는 순수하게 햄릿을 사랑했다. 사랑보다 더 큰, 자신에게 짊어지워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친 척 할 수밖에 없었던 햄릿. 그래서 오필리아는 스스로를 불행한 여자로 규정지었던 건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햄릿에 의해 사랑하던 아버지를 잃은 오필리아는 결국 진짜 미치광이가 되어 물에 빠져 죽는다. <판의 미로>에 등장하는 오필리아는 지하세계의 공주였다. 지상에서 오필리아로서의 삶은 지하세계의 그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무서운 새아버지와 자신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어드는 어머니. 그 가운데 그녀는 새로운 세계로 점점 나아간다. 이렇게 완전히 다를 것 같은 두 오필리아는 묘하게도 닮아있다.

▲ <판의 미로>의 오필리아
ⓒ 프라임 엔터테인먼트
다시 현실과 판타지 이야기를 해보자.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현실과 판타지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영화 후반부에 등장한다. 판과 대화하는 오필리아를 새아버지가 발견하는 장면이다. 그의 눈에는 오필리아가 허공에 대고 이야기 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그간 오필리아의 모든 행적은 현실을 대변하는 영화 속의 모든 사람들에겐 햄릿에서의 오필리아가 미쳐 노래하며 들판을 헤맨 것과 같은 것이 되어 버린다.

두 오필리아의 마지막 장소도 닮아있다. 미쳐 들판을 헤매던 햄릿의 오필리아는 결국 물에 빠져 죽는다. <판의 미로>의 오필리아가 마지막 새아버지와 맞닥뜨린 장소는 지하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포탈이 있는 곳이다. 물과 포탈. 햄릿에서의 물은 죽음과 맞닿아 있고 <판의 미로>에서의 포탈은 지하세계와 닿아 있다. 그들은 결국 그 통로를 통해 죽음과 지하세계로 나아간다. 포탈 자체가 물의 이미지로 형상화된다는 사실도 이러한 생각에 힘을 실어 준다.

길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손에 들어가면 무엇이든 재미있는 B급으로 변한다. <판의 미로> 포스터와 광고 문구를 보고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극장에 들어섰다면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는 어떤 것이든 어둠과 죽음으로 빚어내는 재주를 지니고 있다. 또한 <판의 미로>에서는 현실과 판타지의 모호한 경계를 표현함으로써 판타지가 현실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이야기한다. 물론 이 역할은 오필리아의 몫이다.

현실의 고통과 고난을 잊게 하는 판타지. 일반적인 판타지가 실제로 그러한 역할을 하는 데 반해 <판의 미로>는 그러한 현실을 제대로 꼬집고 있다. <판의 미로>는 그렇게 판타지를 비판하는 판타지로 우리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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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spirinirony